01화 — 여섯 번째 불합격

“삼십 초.”

이어폰 너머로 차분한 기계음이 들렸다.

윤가람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오른손에 들린 카드를 조금 더 세게 쥐었다.

카드 표면에 새겨진 은빛 문양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PEGASUS

그 아래 작은 글자로 등록번호와 개체명이 표시되어 있었다.

LOOP

“알고 있어.”

가람이 작게 말했다.

그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 카드 한쪽에서 희미한 빛이 번졌다.


거대한 경기장 위로 바람이 지나갔다.

관중석은 절반도 차지 않았다.

당연했다.

오늘 열리는 경기는 프로리그 경기가 아니었다.

대한민국 비스트라 프로리그.

BEASTRA KOREA PREMIER.

수많은 아마추어 선수들이 꿈꾸는 그 무대로 들어가기 위한 공개 프로 테스트.

그것도 본선이 아니라 마지막 평가전에 불과했다.

하지만 경기장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는 오늘이 결승전이나 다름없었다.

가람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번이 여섯 번째였으니까.

정확히는 여섯 번째 최종 평가였다.

예선에서 떨어진 것까지 포함하면 숫자를 세는 것이 의미 없었다.

첫 번째에는 경험이 부족했다.

두 번째에는 카드 풀이 부족했다.

세 번째에는 상대가 나빴다.

네 번째에는 운이 없었다.

다섯 번째에는 경기 운영이 부족했다.

사람들은 그렇게 말했다.

가람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여섯 번째까지 오자 변명의 종류도 거의 다 떨어졌다.

결국 남는 건 하나였다.

실력이 부족하다.

프로가 되기에는.

“십 초.”

가람이 고개를 들었다.

눈앞에는 가상과 현실을 결합한 거대한 전장이 펼쳐져 있었다.

전체 면적 약 1.8제곱킬로미터.

북쪽에는 낮은 구릉.

동쪽에는 숲.

서쪽에는 암석지대.

그리고 중앙에는 넓은 초지가 있었다.

경기 시작과 동시에 활성화되는 두 개의 시야 거점.

세 곳의 먹이 자원 지점.

그리고 중앙의 Energy 회복 영역.

단순하게 상대 비스트를 쓰러뜨리는 경기였다면 훨씬 편했을 것이다.

하지만 비스트라는 그런 스포츠가 아니었다.

강한 비스트가 있다고 이기는 것도 아니었고,

상대 비스트를 먼저 쓰러뜨렸다고 항상 승리하는 것도 아니었다.

전장을 차지하고,

비스트를 유지하고,

자원을 확보하고,

시야를 얻으며,

상대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아내야 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 모든 것을 이용해 승리 조건을 만들어야 했다.

가람은 그게 좋았다.

정확히 말하면—

그것만큼은 자신 있었다.

“파이브.”

반대편 선수 입구가 열렸다.

상대 소환사가 걸어 나왔다.

김준혁.

스물한 살.

오늘 평가 대상자 중 상위권으로 분류되는 선수였다.

주력 비스트는 레드 혼 하운드.

높은 공격력.

빠른 돌진.

근접전 특화.

가람은 이미 영상을 스물일곱 번 봤다.

왼쪽 방향 전환이 오른쪽보다 0.3초 느렸다.

돌진 이후 재가속까지 평균 4.8초.

첫 먹이 섭취는 경기 시작 후 3분 전후.

공격적인 선수였지만 Energy가 70퍼센트 이하로 떨어지면 무리한 추격을 자제했다.

김준혁은 가람을 바라보다가 피식 웃었다.

아마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이전 프로 테스트에서도 몇 번 마주쳤다.

직접 붙은 적은 없지만 이름 정도는 알았다.

계속 올라오면서도—

계속 떨어지는 선수.

그 정도로.

“쓰리.”

가람은 카드를 앞으로 들었다.

“투.”

심장이 빨라졌다.

여섯 번째라고 긴장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더 심했다.

이번에도 떨어지면?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다.

“원.”

경기장 전체의 조명이 한순간 꺼졌다.

그리고—

삐이이익!

경기 시작 신호가 울렸다.

가람이 카드를 앞으로 내밀었다.

“루프.”

카드 표면이 새하얗게 빛났다.

빛이 공중으로 퍼졌다.

형태 없는 광채가 뼈대를 만들고,

몸을 만들고,

깃털을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두 장의 커다란 날개가 펼쳐졌다.

히이이잉!

하얀 페가수스가 잔디 위에 네 발을 내디뎠다.

루프가 고개를 한 번 흔들었다.

등에서 펼쳐진 날개가 공기를 크게 밀어냈다.

반대편에서도 붉은 빛이 터졌다.

낮게 으르렁거리는 소리.

붉은 뿔을 가진 거대한 사냥개가 모습을 드러냈다.

“레드! 중앙!”

김준혁의 명령이 떨어졌다.

레드 혼 하운드가 망설임 없이 뛰었다.

가람은 움직이지 않았다.

“루프.”

페가수스가 귀를 움직였다.

“위로.”

파앙!

날개가 바닥의 잔디를 눕혔다.

루프가 하늘로 치솟았다.


[경기 시작 00:41]

가람의 시야 한쪽에 전장 정보가 떠올랐다.

북부 시야 거점.

활성화까지 19초.

동부 거점.

활성화까지 34초.

중앙 Energy 필드.

활성화 완료.

상대는 예상대로 중앙으로 향했다.

가람은 바로 중앙을 포기했다.

“동쪽.”

루프가 방향을 틀었다.

관중석 어디선가 작은 탄식이 들렸다.

중앙을 선점하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특히 경기 초반에는.

하지만 가람은 알고 있었다.

김준혁은 중앙을 먹으면 반드시 북부 시야 거점까지 연결한다.

그게 이 선수의 가장 익숙한 시작 패턴이었다.

중앙 Energy 확보.

북부 시야 확보.

그리고 상대 움직임을 확인한 뒤 첫 교전.

안정적이고 강력한 빌드.

그래서—

읽기 쉬웠다.

“조금 더 동쪽.”

루프가 숲 위를 낮게 날았다.

나무 사이로 작은 움직임들이 보였다.

경기용 먹이 자원.

소형 먹이 두 무리.

중형 하나.

가람의 눈이 좁아졌다.

‘동쪽 자원이 예상보다 많다.’

맵 생성 데이터는 경기 직전까지 공개되지 않는다.

기본 구조만 같고 실제 자원 위치는 매 경기 조금씩 달라진다.

가람은 손가락으로 허공을 움직였다.

자신에게만 보이는 경기 인터페이스 위에 표시를 남겼다.

동쪽 숲.

중형 먹이.

서쪽 암석지대.

아직 미확인.

북쪽—

“온다.”

루프의 귀가 먼저 움직였다.

가람보다 빨랐다.

곧이어 숲 너머에서 붉은 형체가 보였다.

레드 혼 하운드.

예상보다 빨랐다.

‘북부 시야를 안 먹었어?’

김준혁이 중앙에서 바로 방향을 틀었다.

정찰 없이 추격.

평소 영상에서는 거의 하지 않던 선택이었다.

가람이 순간 웃었다.

“나 때문에 바꿨네.”

상대도 연구했다는 뜻이었다.

가람이 정찰을 좋아한다는 것.

장기전을 선호한다는 것.

그리고—

초반 직접 교전을 피한다는 것.

김준혁이 외쳤다.

“레드! 점프!”

붉은 사냥개가 바위를 밟았다.

엄청난 힘으로 땅을 박찼다.

거대한 몸이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루프, 왼쪽!”

루프가 날개를 접었다.

공중에서 몸을 비틀었다.

콰앙!

레드 혼 하운드의 앞발이 루프가 있던 곳을 스쳤다.

공격은 빗나갔다.

하지만 충격파만으로 루프의 자세가 무너졌다.

“상승!”

루프가 다시 날개를 펼쳤다.

높이를 확보했다.

가람의 눈앞에 정보가 연속해서 떠올랐다.

루프 Energy.

94%.

상대 Energy—

알 수 없다.

하지만 가람은 머릿속으로 계산했다.

중앙까지 전력 질주.

점프 공격.

추격.

‘92에서 94 사이.’

아직 충분하다.

싸울 이유가 없었다.

“빠져.”

루프가 숲 위로 날아갔다.

김준혁이 따라왔다.


경기 시작 3분 12초.

관중석에서 불만 섞인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또 도망만 치네.”

“저 선수 원래 저래.”

“저러다 시간 다 가겠네.”

가람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건 다른 것이었다.

김준혁이 첫 먹이를 먹지 않았다.

가람의 예상대로라면 이미 한 번은 공급했어야 했다.

‘추격 때문에 루틴이 깨졌어.’

상대가 자신을 잡는 데 집중하고 있다.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좋았다.

루프는 페가수스다.

속도와 비행.

장거리 이동.

정찰.

전장 탐색에서는 뛰어났다.

하지만 정면 전투에서는 약하다.

레드 혼 하운드와 맞붙는 순간 불리하다.

그렇다면 싸우지 않으면 된다.

‘서쪽.’

가람은 루프를 돌렸다.

높은 고도에서 서쪽 암석지대가 보였다.

먹이 없음.

작은 Energy 자연 회복 지형 하나.

동쪽 먹이 자원 세 곳.

중앙 대형 Energy 필드.

북쪽—

가람의 눈빛이 멈췄다.

북부 거점 아래 작은 계곡.

중형 먹이 두 무리.

‘찾았다.’

가람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전장의 흐름이 머릿속에서 선으로 이어졌다.

상대는 중앙을 확보했다.

하지만 먹이를 먹지 않았다.

자신을 추격하느라 북부 거점도 포기했다.

Energy는 계속 떨어진다.

레드 혼 하운드는 강하다.

그러나 먹이 효율은 좋지 않다.

특히 공격 상태에서는 소모가 크다.

앞으로 약 4분.

4분 뒤.

상대는 반드시 먹이를 찾는다.

가장 가까운 곳은—

북부 계곡.

‘거기로 온다.’

가람은 확신했다.

“루프.”

페가수스가 고개를 돌렸다.

“북쪽으로.”


경기 시작 5분 49초.

루프가 북부 계곡 위를 지나갔다.

가람은 일부러 먹이에 손대지 않았다.

먹이 자원이 그대로 있다는 것을 상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곧바로 루프를 남서쪽으로 돌렸다.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김준혁은 반드시 온다.

20초.

30초.

40초.

아무 소리도 없다.

가람의 이마에 땀이 맺혔다.

‘내가 틀렸나?’

50초.

그때.

멀리서 낮은 울음소리가 들렸다.

가람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왔다.

레드 혼 하운드가 계곡으로 들어왔다.

“먹어!”

김준혁의 목소리.

예상대로였다.

가람은 즉시 루프를 돌렸다.

“동부 거점!”

루프가 날개를 펼쳤다.

그 순간부터 경기가 달라졌다.

상대는 먹이를 섭취해야 했다.

가람은 그 시간을 이용해 동부 시야 거점을 확보했다.

시야가 넓어졌다.

북부 계곡.

중앙 초지.

서쪽 암석지대 일부까지 보였다.

김준혁의 이동 경로가 드러났다.

가람의 머릿속에서 수십 개의 정보가 연결됐다.

‘중앙 복귀까지 1분 20초.’

‘Energy는 회복됐지만 먹이 행동 때문에 이동이 늦다.’

‘동쪽은 내가 먹이 우위.’

‘북쪽 시야 비어 있음.’

지금부터 상대는 점점 불리해진다.

가람은 확신했다.

‘이겼다.’


경기 시작 8분 31초.

가람은 두 번째 먹이를 확보했다.

루프 Energy 98%.

상대는 76% 정도로 추정.

시야는 가람 쪽이 넓다.

자원도 앞선다.

중앙은 김준혁이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뿐이었다.

4분.

앞으로 4분만 이 흐름을 유지하면 된다.

상대가 공격하면 피한다.

먹이를 끊는다.

중앙 밖으로 끌어낸다.

Energy를 소모시킨다.

그리고 마지막 2분에 중앙을 빼앗는다.

완벽했다.

가람은 루프의 위치를 확인했다.

동부 숲 가장자리.

상대와 거리는 약 240미터.

김준혁이 움직였다.

가람은 곧바로 계산했다.

‘또 추격?’

아니다.

방향이 이상했다.

북쪽.

레드 혼 하운드가 북쪽으로 향했다.

가람의 미간이 좁아졌다.

북부 시야 거점?

지금 먹기에는 늦었다.

그렇다면—

레드 혼 하운드가 갑자기 방향을 틀었다.

루프를 향해서가 아니었다.

동쪽 숲으로.

먹이 자원.

가람이 확보한 두 번째 먹이 지점이었다.

“아.”

가람이 숨을 멈췄다.

상대가 자신을 쫓지 않는다.

자원을 먹으러 간다.

‘판단 바꿨어.’

김준혁이 추격을 포기했다.

가람의 전략을 이해한 것이다.

그리고 자원전으로 전환했다.

괜찮다.

예상 범위 안이다.

가람은 다시 계산했다.

동쪽 먹이까지 38초.

루프가 먼저 가면 16초.

싸움이 생긴다.

싸워야 하나?

루프 Energy 97.

상대 약 74.

지금이라면?

공격력 차이.

지형.

루프의 비행 고도.

도주 경로.

북부 거점.

중앙.

다음 먹이 생성까지 2분 40초.

가람의 머릿속에서 숫자가 빠르게 지나갔다.

“루프.”

페가수스가 몸을 돌렸다.

“동쪽으로—”

가람이 말을 멈췄다.

싸우면 이길 수 있을까?

아니.

쓰러뜨릴 필요 없다.

먹이를 먼저 먹으면 된다.

하지만 먹이 섭취 중에 공격받으면?

루프가 다칠 수 있다.

상대 돌진 각도는?

숲이라 직선 돌진이 제한된다.

그렇다면—

“가람 선수!”

심판 시스템의 경고음이 들렸다.

경기 시간.

흐름이 지나가고 있었다.

가람은 이를 악물었다.

“동쪽!”

루프가 움직였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레드 혼 하운드가 먼저 숲에 진입했다.

김준혁은 가람과 달랐다.

먹이를 먹을지,

싸울지,

중앙을 지킬지—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한번 결정하면 움직였다.

레드 혼 하운드가 먹이 지점에 도착했다.

가람의 눈앞에서 상대 Energy 추정치가 빠르게 수정됐다.

‘안 돼.’

지금 공격해야 했다.

가람도 알았다.

이대로 상대가 회복하면 지금까지 쌓아둔 우위가 사라진다.

“루프! 들어가!”

페가수스가 숲 사이로 낮게 내려왔다.

김준혁이 기다렸다는 듯 웃었다.

“레드.”

붉은 사냥개가 고개를 들었다.

“혼 러시!”

뿔이 붉게 빛났다.

가람의 눈이 커졌다.

‘먹이를 다 먹기 전에 공격?’

그건 효율이 나빴다.

Energy 회복을 포기하는 행동.

하지만—

효율이 문제가 아니었다.

지금 루프가 공격 범위 안에 들어왔다.

김준혁은 그 기회를 선택했다.

가람은 또 계산했다.

왼쪽 회피.

나무 간격.

상승.

오른쪽—

“루프, 왼쪽으로—”

레드 혼 하운드가 뛰었다.

콰아앙!

“루프!”

거대한 충격음.

루프의 몸이 옆으로 밀렸다.

날개 끝이 나무에 부딪쳤다.

흰 깃털이 공중에 흩어졌다.

가람의 얼굴에서 피가 빠졌다.

HP 손실.

중간 수준.

비행은 가능.

하지만 왼쪽 날개의 출력이 떨어졌다.

김준혁은 멈추지 않았다.

“한 번 더!”

레드 혼 하운드가 달렸다.

가람은 이를 악물었다.

싸우면 안 된다.

지금은 아니다.

“상승! 빠져!”

루프가 숲 위로 날아올랐다.

평소보다 느렸다.

김준혁은 따라오지 않았다.

대신 남은 먹이를 먹었다.

그 순간 가람은 알았다.

경기가 뒤집혔다.


남은 시간 2분 03초.

김준혁은 중앙.

가람은 동부.

상대는 중앙 Energy 필드와 먹이를 확보했다.

시야에서는 아직 가람이 우위였다.

하지만 점수는 김준혁이 앞서 있었다.

루프의 Energy는 충분했다.

그러나 왼쪽 날개 손상 때문에 속도가 떨어졌다.

가람은 전장을 보았다.

중앙까지 41초.

지금 가면 싸워야 한다.

상대 Energy 90 이상.

루프 86.

정면전 불리.

북쪽을 먹으면?

남은 시간 부족.

동쪽 거점을 지키면?

점수 패배.

방법은 하나였다.

중앙 공격.

가람은 알고 있었다.

“루프.”

페가수스가 숨을 내쉬었다.

하얀 몸 곳곳에 흙이 묻어 있었다.

왼쪽 날개가 아주 조금 내려가 있었다.

가람은 입을 열었다.

“중앙…”

말이 나오지 않았다.

루프 상태가 눈에 들어왔다.

날개.

호흡.

피로도.

Energy.

부상.

이번 공격에서 한 번 더 직격을 당하면?

다음 주까지 회복이 늦어질 수 있다.

혹시 근육 손상이라도 생기면?

다음 테스트—

아니.

다음이 있기는 한가?

“윤가람 선수.”

심판 시스템.

“남은 시간 1분 30초.”

가람은 주먹을 쥐었다.

가야 한다.

프로 선수가 되려면.

여기서 이겨야 한다.

루프를 믿고 보내야 한다.

그런데—

“……”

5초가 흘렀다.

가람은 결정하지 못했다.

김준혁은 그 5초 동안 중앙 수비 위치를 완성했다.

가람의 눈앞에 가능한 공격 경로가 사라졌다.

그제야 가람이 말했다.

“가자.”

루프가 날았다.


경기 종료까지 18초.

루프가 중앙에 도착했다.

레드 혼 하운드가 기다리고 있었다.

가람은 위쪽으로 루프를 돌렸다.

상대도 움직였다.

10초.

중앙 거점 범위 안으로 진입.

8초.

루프가 지면 가까이 내려왔다.

6초.

레드 혼 하운드가 돌진.

4초.

가람이 외쳤다.

“오른쪽!”

루프가 몸을 틀었다.

2초.

공격이 스쳤다.

1초.

루프의 발끝이 중앙 점령선 안으로 들어왔다.

삐이이익!

경기 종료.

전광판에 결과가 떠올랐다.


WINNER

김준혁


관중석에서 작은 박수가 나왔다.

가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루프가 천천히 걸어왔다.

가람은 카드로 돌려보내기 전에 직접 날개를 확인했다.

큰 부상은 아니었다.

다행이었다.

정말 다행이었다.

그런데—

가람은 웃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알고 있었으니까.

이 경기는 질 경기가 아니었다.

정보도 앞섰다.

자원도 앞섰다.

상대의 Energy 감소도 읽었다.

첫 움직임도 예상했다.

먹이 위치도 먼저 찾았다.

상대가 어디로 갈지도 맞혔다.

그런데 졌다.

가람이 루프의 목에 손을 올렸다.

“미안.”

루프가 코로 가람의 어깨를 툭 밀었다.

꾸짖는 것인지,

괜찮다는 것인지,

가람은 알 수 없었다.


평가 결과는 한 시간 뒤에 나왔다.

가람은 복도 벤치에 앉아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았다.

메일 알림.

[BKP 공개 프로 테스트 결과 안내]

누르지 않아도 내용을 알고 있었다.

그래도 열었다.


윤가람 선수께.

금일 실시한 공개 프로 테스트 결과를 안내드립니다.

종합 평가 결과—

최종 불합격.


가람은 화면을 껐다.

별 감정이 들지 않았다.

다섯 번째까지는 화가 났다.

어떤 때는 심사위원을 탓했고,

어떤 때는 상대를 탓했고,

어떤 때는 운을 탓했다.

이번에는 아니었다.

왜 떨어졌는지 알 것 같았다.

경기 뒤 심사위원이 했던 말도 떠올랐다.

“전장은 잘 봅니다.”

칭찬처럼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졌다.

“그런데 선수는 관찰자가 아닙니다.”

가람은 천장을 바라보았다.

여섯 번째.

이제 일곱 번째를 준비해야 하나?

아니면—

그만해야 하나.

스물한 살.

늦었다고 할 나이는 아니다.

하지만 빠르다고 할 나이도 아니었다.

프로 아카데미 출신들은 열여덟, 열아홉에도 데뷔했다.

가람은 아직 프로 계약서 한 장 받아본 적이 없었다.

복도 끝 유리창 너머로 경기장이 보였다.

방금까지 자신이 뛰었던 곳.

스태프들이 다음 평가를 준비하고 있었다.

다른 선수들이 들어갈 것이다.

다른 비스트들이 싸울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오늘 프로가 된다.

가람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드 케이스를 확인했다.

루프의 카드가 들어 있었다.

은빛 문양이 평소처럼 조용했다.

“가자.”

가람은 경기장을 떠났다.


그로부터 약 십 분 뒤.

관중석 가장 위쪽.

사람이 거의 빠져나간 자리에서 한 남자가 노트북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화면에는 조금 전 경기가 재생되고 있었다.

윤가람과 김준혁의 경기.

영상이 멈췄다.

경기 시작 5분 49초.

페가수스가 북부 계곡을 지나가는 장면.

남자는 영상을 앞으로 돌렸다.

50초 뒤.

레드 혼 하운드가 정확히 그 계곡으로 들어왔다.

다시 뒤로.

다시 앞으로.

같은 장면을 세 번 확인했다.

이번에는 다른 데이터를 띄웠다.

가람이 경기 중 표시한 전술 마커.

상대 예상 이동 경로.

먹이 예상 소비 지점.

Energy 추정치.

남자의 눈이 조금 가늘어졌다.

대부분 맞았다.

경기 결과만 빼고.

옆에 있던 직원이 물었다.

“차 감독님, 다음 선수 보셔야 합니다.”

남자가 대답하지 않았다.

화면 속에서는 윤가람이 마지막 공격 명령을 망설이고 있었다.

5초.

프로 경기에서는 너무 긴 시간.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직원이 말했다.

“저 선수는 탈락입니다.”

“알아.”

차도현이 대답했다.

“그런데?”

차도현은 화면을 정지했다.

페가수스는 동쪽에 있었다.

레드 혼 하운드는 북쪽.

중앙은 비어 있었다.

가람이 경기 전체를 가장 정확하게 읽었던 순간이었다.

차도현이 말했다.

“싸우는 건 못하는데.”

그의 손가락이 화면 위 가람의 이동 경로를 따라갔다.

“전장은 진짜 잘 보네.”

직원이 웃었다.

“그런 선수를 어디다 쓰려고요?”

차도현은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화면에 다른 경기 영상이 열렸다.

세 명의 소환사가 동시에 뛰는 3대3 경기.

그리고 그제야 입을 열었다.

“혼자 쓰면 안 되지.”

차도현의 입가에 아주 작은 미소가 걸렸다.

“셋이 쓰면 되지.”


1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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