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화 — 전장을 너무 많이 보는 선수

윤가람이 집에 도착했을 때는 밤 열한 시가 넘었다.

현관문을 열자 불이 꺼진 거실이 먼저 보였다.

가람은 신발을 벗고 한동안 그대로 서 있었다.

불을 켜고 싶지 않았다.

어둠이 편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면 적어도 오늘 경기만큼은 다시 볼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가람은 결국 불을 켰다.

그리고 방에 들어가 노트북부터 열었다.

화면 한쪽에는 한 시간 전 받은 메일이 그대로 떠 있었다.

[BKP 공개 프로 테스트 결과 안내]

가람은 메일 창을 닫았다.

대신 경기 기록 프로그램을 실행했다.

영상 파일 하나가 자동으로 목록 가장 위에 나타났다.

2026 BKP OPEN TEST / MATCH 47

윤가람 VS 김준혁.

가람은 재생 버튼을 눌렀다.


경기 시작 41초.

루프가 동쪽 숲으로 이동한다.

일시 정지.

가람은 마우스를 움직였다.

상대 예상 경로.

중앙 Energy 필드.

북부 시야 거점.

동부 먹이 자원.

화면 위에 수십 개의 선이 떠올랐다.

다시 재생.

2분 17초.

일시 정지.

레드 혼 하운드가 추격한다.

“여기까지 맞았고.”

재생.

3분 12초.

“먹이를 안 먹었고.”

재생.

5분 49초.

루프가 북부 계곡을 지나간다.

가람은 영상을 멈췄다.

그리고 별도의 데이터 창을 열었다.

김준혁의 이전 경기 17개.

첫 먹이 섭취 평균 시각.

3분 07초.

표준편차 21초.

오늘 경기에서는 6분 43초.

평소보다 세 분 이상 늦었다.

가람은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렸다.

“여기까지도 맞았는데.”

경기 영상을 조금 앞으로 넘겼다.

6분 41초.

레드 혼 하운드가 계곡으로 들어온다.

먹이를 먹는다.

가람이 동부 거점을 확보한다.

7분.

7분 30초.

8분.

가람은 다시 영상을 멈췄다.

화면 오른쪽 위에 당시 자신이 기록했던 상대 Energy 예상값이 떠 있었다.

74~77%.

공식 경기 데이터에서 확인된 실제 수치는—

76.8%.

거의 정확했다.

가람은 의자에 등을 기댔다.

“그러니까.”

틀리지 않았다.

판단 자체는.

상대의 이동도 맞혔다.

Energy도 맞혔다.

먹이를 찾는 시점도 맞혔다.

전장이 어떻게 흘러갈지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졌다.

가람은 영상의 마지막 3분을 재생했다.

자신의 목소리가 들렸다.

“루프, 동쪽으로—”

멈춤.

7초.

다시 재생.

“루프, 들어가!”

멈춤.

4초.

가람의 얼굴이 굳었다.

다시 뒤로 돌렸다.

이번에는 경기 영상 옆에 명령 입력 로그를 띄웠다.

판단 시점과 명령 시점 사이의 차이.

2.4초.

3.1초.

4.7초.

그리고 마지막 중앙 공격.

5.3초.

프로 경기에서 5초는 긴 시간이 아니다.

경기를 보는 사람에게는.

하지만 비스트라 경기에서는 달랐다.

SPD가 높은 비스트는 5초 동안 수십 미터를 움직인다.

공격형 비스트라면 스킬 하나가 끝난다.

시야가 바뀌고,

먹이가 사라지고,

Energy가 회복되고,

교전 각도가 달라진다.

전장은 5초 동안 기다려주지 않는다.

가람은 심사위원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전장은 잘 봅니다.”

그리고.

“선수는 관찰자가 아닙니다.”

“알아.”

가람이 혼잣말했다.

“나도 안다고.”

노트북 화면 속의 자신은 알고도 움직이지 못했다.


카드 케이스에서 작은 진동음이 울렸다.

가람이 고개를 돌렸다.

투명 케이스 안에 놓인 루프의 카드에서 상태 표시등이 깜빡이고 있었다.

ACTIVE READY

가람은 잠시 고민하다 카드를 꺼냈다.

집 안에서 대형 비스트를 현실 상태로 전환하는 건 불가능했다.

페가수스가 나올 공간이 없었다.

아파트 단지 외곽에는 주민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비스트 활동장이 있었다.

가람은 재킷을 다시 입었다.

“너도 답답하지?”

카드가 대답할 리 없었다.

그래도 가람은 카드를 주머니에 넣었다.


새벽의 활동장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시설 외곽에 설치된 카드 인증기에 루프의 카드를 접촉했다.

삑.

등록 개체 확인.

Species: Pegasus

개체명: Loop

소유자: 윤가람

대형 비스트 활동구역 사용 가능.

문이 열렸다.

가람은 넓은 잔디 구역 한가운데까지 걸어갔다.

그리고 카드를 들었다.

“나와.”

빛이 퍼졌다.

몇 초 뒤 루프가 잔디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루프는 나오자마자 날개부터 크게 펼쳤다.

가람은 반사적으로 왼쪽 날개를 살폈다.

경기장에서 충격을 받은 부분.

응급치료는 끝났지만 흰 깃털 일부가 정돈되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가람이 다가가려 하자 루프가 고개를 돌렸다.

“봐봐.”

루프가 한 걸음 옆으로 이동했다.

“안 건드릴게.”

다시 한 걸음.

“진짜 안 건드린다고.”

루프가 가람을 빤히 바라봤다.

가람은 손을 내렸다.

“알았어.”

그제야 루프가 시선을 돌렸다.

가람은 벤치에 앉았다.

루프는 잔디를 몇 번 밟아보더니 천천히 걸었다.

비스트는 카드 안에서 회복한다.

그렇다고 카드 안에서 모든 생리활동이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카드 상태에서는 에너지 소비가 극단적으로 줄어들고 생체 상태가 안정된다.

하지만 장기간 카드에만 넣어두는 것은 권장되지 않았다.

먹어야 했다.

움직여야 했다.

햇빛도 필요했다.

다른 비스트와 접촉하는 개체도 있었다.

비스트는 물건이 아니었다.

살아 있었다.

너무 당연한 사실이었지만, 가람은 프로를 준비하면서 가끔 잊곤 했다.

HP.

ATK.

DEF.

SPD.

Energy.

화면 위에서는 숫자로 보였다.

하지만 지금 루프는 그저 가람 옆에서 풀 냄새를 맡고 있는 한 마리 페가수스였다.

가람이 가방에서 먹이를 꺼냈다.

“먹을래?”

루프가 바로 다가왔다.

“이럴 땐 말 잘 들어.”

손바닥 위의 사료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가람이 웃었다.

오늘 처음 웃었다.

루프가 두 번째를 요구하듯 코를 들이밀었다.

“야.”

한 개 더.

또 하나.

“경기에서는 내 말을 그렇게 안 듣더니.”

가람은 마지막 사료를 건넸다.

루프가 그것까지 받아먹었다.

“나 말이야.”

가람이 말했다.

루프의 귀가 움직였다.

“그만해야 하나?”

루프가 사료 봉지를 쳐다봤다.

“진지하게 얘기하는데.”

봉지를 향한 시선은 변하지 않았다.

“여섯 번이야.”

가람은 웃음 비슷한 숨을 뱉었다.

“프로 테스트 최종에서 여섯 번.”

떨어졌다.

그 말을 굳이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나는 다 보이는 것 같거든.”

가람은 활동장 건너편을 바라봤다.

“상대가 어디로 가는지.”

“뭐 먹을지.”

“언제 지치는지.”

“다음에 어디서 싸움이 날지.”

루프가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결정해야 할 때마다…”

가람이 손바닥을 폈다.

“이것도 보이고.”

손가락 하나.

“저것도 보이고.”

둘.

“그다음 것도 보이고.”

셋.

“그러다 늦어.”

가람은 손을 내렸다.

“안 보이는 사람이 부러울 때가 있다.”

루프가 천천히 가람 쪽으로 걸어왔다.

가람은 말했다.

“그냥 하나 보고 달려들 수 있으면 얼마나 편할까.”

루프가 가람 앞에서 멈췄다.

그리고—

퍽.

코로 가람의 이마를 밀었다.

“아!”

가람이 뒤로 넘어갈 뻔했다.

“뭐야!”

루프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돌아섰다.

활동장 반대편으로 몇 걸음 가더니 갑자기 달리기 시작했다.

커다란 날개가 펴졌다.

바람이 일었다.

루프의 몸이 지면에서 떠올랐다.

가람이 일어섰다.

“야, 날개!”

낮은 고도로 한 바퀴.

두 바퀴.

평소보다 속도는 느렸지만 비행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루프는 세 번째 바퀴를 돈 뒤 가람 바로 앞에 내려왔다.

착지하면서 풀잎이 사방으로 날렸다.

루프는 가람을 보았다.

가람도 루프를 보았다.

“뭐.”

대답은 없었다.

“더 하자고?”

루프가 날개를 접었다.

가람은 피식 웃었다.

“내일 아프다고 하지 마라.”

루프는 관심도 없다는 듯 잔디를 뜯었다.

“알았어.”

가람은 벤치에서 자신의 휴대폰을 집었다.

“일단 일곱 번째까지는 해보자.”

어차피 거기까지 갔는데.

한 번 더 떨어진다고 크게 달라질 것도 없었다.

가람은 노트북 경기 기록을 휴대폰으로 옮기려다 메시지 하나가 도착한 걸 발견했다.

모르는 번호였다.

처음에는 광고인 줄 알았다.


[NEST BEASTRA TEAM]

안녕하세요. 윤가람 선수.

BKP 공개 테스트 경기 기록을 확인하고 연락드립니다.

당 팀의 비공개 OPEN SCRIM 참가를 제안드립니다.

참가 의향이 있으시면 아래 링크를 통해 회신해주시기 바랍니다.


가람은 한동안 화면만 바라봤다.

다시 읽었다.

그리고 또 읽었다.

“NEST?”

들어본 이름이었다.

당연했다.

BKP 팀이니까.

좋은 의미로 유명한 팀은 아니었다.

지난 시즌 10위.

그 전 시즌 9위.

플레이오프 진출 기록 없음.

시즌 중 감독 교체 두 번.

신인 방출도 잦았다.

팬들 사이에서는 매년 강등 후보로 거론되는 팀.

가람이 휴대폰을 내려다봤다.

“이거…”

루프가 고개를 들었다.

“사기 아니겠지?”

가람은 발신 번호를 검색했다.

네스트 공식 구단 번호와 같았다.

이번에는 링크 주소를 확인했다.

공식 도메인.

가람의 심장이 조금 빨라졌다.

프로팀에서 직접 연락이 왔다.

여섯 번 떨어진 자신에게.

왜?

가람은 메시지 마지막까지 읽었다.

참가 회신 기한.

내일 오후 여섯 시.

OPEN SCRIM 일정.

사흘 뒤.

가람이 말했다.

“루프.”

페가수스가 가람을 보았다.

“일곱 번째까지 안 가도 될지도 모르겠다.”

루프는 고개를 갸웃했다.

가람은 참가 버튼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

잠깐 멈췄다.

그리고 웃었다.

“이번에는 빨리 결정하자.”

터치.

참가 의향: YES

화면이 바뀌었다.


참가 신청이 완료되었습니다.

NEST OPEN SCRIM


가람은 화면을 한동안 바라봤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여섯 번째 불합격이었다.

아직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프로가 된 것도 아니다.

계약을 받은 것도 아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처음으로 길이 하나 더 생긴 것 같았다.

가람이 루프를 바라봤다.

“가자.”

루프가 귀를 세웠다.

“이번엔 떨어지기 전에 먼저 가보자고.”

새벽의 활동장 위로 바람이 불었다.

루프가 다시 날개를 펼쳤다.


2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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