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핀은 아름다웠다.
윤가람은 그렇게 생각했다.
강한 비스트를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이 조금 이상할 수도 있었지만, 눈앞의 개체는 그 말 외에는 표현하기 어려웠다.
독수리의 머리.
황금빛 눈.
넓은 날개.
사자처럼 단단한 몸.
네 발이 바닥을 밟고 있었는데도 금방이라도 하늘로 튀어오를 것처럼 보였다.
강태건이 손을 뻗어 그리핀의 목덜미를 두 번 두드렸다.
“아레스.”
개체명.
그리핀이 짧게 울었다.
키익.
반대편에서 가람도 루프를 현실 상태로 전환했다.
하얀 빛.
페가수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루프와 아레스.
두 비스트가 서로를 확인했다.
아레스는 고개를 들었다.
루프는 귀를 조금 뒤로 젖혔다.
경기 시작 전부터 성격 차이가 보였다.
가람이 웃었다.
“쫄지 마.”
루프가 가람의 팔을 코로 밀었다.
“내가 쫄았다고?”
다시 밀었다.
“알았어.”
반대편에서 태건이 말했다.
“둘이 대화라도 해?”
“제가 일방적으로 합니다.”
“편하겠다.”
“별로요. 대답을 안 해서.”
심판 시스템이 양 선수를 확인했다.
Individual Evaluation Match
Field Type — Hill & Open Ground
Time Limit — 15 Minutes
Victory Conditions — Beast incapacitation / objective score / surrender
가람은 경기장을 둘러봤다.
중앙에 완만한 언덕.
양쪽에 낮은 바위 지역.
나무는 거의 없었다.
비행 비스트에게 유리한 개방형 전장.
하지만—
가람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숨을 곳이 없다.
페가수스에게도 비행 공간이 넓다는 건 장점이지만 그리핀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아레스 같은 공격형 비스트에게는 오히려 더 좋았다.
태건이 물었다.
“작전 다 짰어?”
가람은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짰는데.”
“뭡니까?”
태건이 웃었다.
“잡는다.”
가람도 웃었다.
“간단하네요.”
“간단한 게 좋은 거야.”
경기 시작 카운트다운.
가람은 루프를 바라봤다.
“일단 위.”
아레스가 자세를 낮췄다.
태건은 이미 가람을 보고 있지 않았다.
전장만 보고 있었다.
START.
“루프, 상승!”
“아레스, 가!”
두 비스트가 동시에 날아올랐다.
처음 10초.
가람은 바로 알았다.
‘빠르다.’
루프도 느린 비스트가 아니다.
오히려 속도는 강점이었다.
하지만 그리핀의 속도는 종류가 달랐다.
루프는 넓은 곡선을 그리며 고도를 얻었다.
아레스는 거의 직선으로 치솟았다.
비행 자체의 최고속도보다—
가속.
짧은 거리에서의 방향 전환.
그리고 상대를 향해 거리를 줄이는 능력.
공격을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보였다.
“오른쪽!”
루프가 몸을 기울였다.
아레스가 바로 따라왔다.
가람의 눈앞에 두 비스트의 이동 경로가 겹쳤다.
‘정면 충돌까지 7초.’
“더 돌아.”
루프가 원을 넓혔다.
아레스가 다시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6초.
5초.
가람은 계산했다.
루프가 원을 더 크게 만들면 아레스의 회전 반경 안쪽을 벗어날 수 있다.
“고도 유지하고 외곽!”
태건이 소리쳤다.
“위로 밀어!”
아레스가 아래쪽에서 접근했다.
가람의 표정이 바뀌었다.
‘왜 아래?’
상대가 루프를 공격하려면 같은 고도까지 올라오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아레스는 루프보다 낮았다.
그 순간 가람이 이해했다.
위로 몰고 있다.
페가수스는 상승 시 Energy 소비가 커진다.
그리핀은 강한 날개와 체격 덕분에 같은 상승에서도 부담이 적다.
태건은 처음부터 루프의 Energy를 깎고 있었다.
가람이 태건을 보았다.
태건은 웃지 않았다.
완전히 경기에 들어가 있었다.
‘단순한 공격형이 아니잖아.’
가람이 말했다.
“루프, 하강!”
루프가 날개를 접었다.
하늘에서 떨어지듯 내려갔다.
아레스도 따라 내려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가람이 예상했다.
“언덕 뒤!”
루프가 중앙 언덕의 경사를 따라 낮게 날았다.
아레스의 시야에서 잠시 사라졌다.
가람은 빠르게 경기 정보를 확인했다.
루프 Energy.
91%.
아레스 예상.
94~96%.
벌써 차이가 났다.
‘이대로 가면 안 돼.’
가람은 지상 자원을 확인했다.
북쪽 먹이 지점.
소형.
서쪽 중형.
동쪽—
미확인.
먼저 먹어야 한다.
“서쪽.”
루프가 방향을 틀었다.
그러자 태건이 바로 말했다.
“먹이 간다.”
가람의 표정이 굳었다.
태건은 루프를 보지 않고 있었다.
가람을 보고 있었다.
“아레스, 서쪽 차단!”
그리핀이 루프보다 짧은 경로로 이동했다.
가람의 머릿속에 전장 지도가 펼쳐졌다.
‘서쪽 막힘.’
그럼 북쪽.
하지만 북쪽까지 가면 24초.
아레스가 다시 접근.
‘동쪽 미확인.’
가람이 잠깐 망설였다.
“동쪽.”
루프가 움직였다.
태건이 이번에는 따라가지 않았다.
가람의 눈이 좁아졌다.
왜?
답은 8초 뒤 나왔다.
동쪽에는 먹이가 없었다.
대신 작은 시야 거점만 있었다.
가람은 이를 악물었다.
‘맵 봤구나.’
태건은 경기 초반 아레스가 상승하면서 이미 동쪽을 확인했다.
공격만 하고 있던 게 아니었다.
루프가 동쪽으로 움직이는 동안 아레스는 중앙을 잡았다.
태건이 점수 우위를 만들었다.
가람은 자신도 모르게 웃었다.
“잘하네.”
멀리서 태건이 말했다.
“뭐?”
“아닙니다.”
경기 시작 4분 12초.
가람은 싸우지 않았다.
정확히는 싸울 수 없었다.
아레스의 정면 공격력은 루프보다 훨씬 높았다.
한 번 잡히면 위험하다.
대신 움직였다.
북쪽.
서쪽.
중앙 외곽.
고도 변경.
시야.
먹이.
가람은 끊임없이 아레스의 Energy를 계산했다.
아레스의 움직임은 강력했지만 공격 시 소모가 컸다.
특히 급격한 가속 이후 회복까지 짧은 공백이 있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가람은 그 시간을 기록했다.
첫 번째 공격 후 재가속 4.2초.
두 번째 4.4초.
세 번째 4.7초.
조금씩 늘어난다.
피로 누적.
‘된다.’
가람은 경기 초반 처음으로 확신했다.
잡히지만 않으면.
아레스가 계속 공격하게 만들면.
7분 이후부터 차이가 생긴다.
9분.
10분.
그때부터는 루프가 더 오래 움직일 수 있다.
가람이 말했다.
“루프, 북쪽으로.”
태건이 따라왔다.
좋다.
“높이 올리지 마.”
루프가 지면 10미터 정도의 낮은 고도를 유지했다.
아레스가 뒤에서 접근했다.
가람은 뒤를 보지 않았다.
5초.
4초.
“왼쪽.”
루프가 크게 꺾었다.
아레스가 지나쳤다.
다시 접근.
“오른쪽.”
피한다.
세 번째.
“상승.”
피한다.
가람의 얼굴에 미소가 조금씩 생겼다.
태건도 눈치챘다.
“Energy 빼려고?”
가람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래.”
태건이 말했다.
“그게 네 경기였지.”
가람은 태건을 보았다.
그는 웃고 있었다.
“다 봤다고 했잖아.”
가람의 미소가 사라졌다.
태건이 말했다.
“그러니까 나도 기다릴 필요 없겠네.”
가람의 본능이 경고했다.
뭔가 온다.
“루프, 위로!”
태건의 목소리가 겹쳤다.
“아레스!”
그리핀이 날개를 크게 펼쳤다.
한 번.
아래로.
그리고—
다시 위로.
아레스가 거의 수직으로 치솟았다.
가람의 눈이 커졌다.
종족스킬.
그리핀이 가진 고유 전투 능력.
“왕의 급강하.”
태건의 목소리가 낮았다.
아레스가 루프보다 훨씬 높은 고도까지 올라갔다.
‘안 돼.’
가람은 즉시 경로를 계산했다.
높이.
각도.
낙하 속도.
루프 이동.
피할 방향.
왼쪽?
아니다.
오른쪽?
바위.
전방—
‘4초.’
결정해야 한다.
“루프!”
그리핀이 날개를 접었다.
그리고 떨어졌다.
아니.
쏘아졌다.
공기가 터지는 소리가 났다.
쾅!
가람이 외쳤다.
“오른쪽 아래!”
루프가 몸을 틀었다.
아레스가 지나갔다.
직격은 아니다.
가람이 숨을 내쉬려던 순간—
루프의 몸이 흔들렸다.
“뭐?”
왕의 급강하가 만든 충격.
아레스의 앞발이 루프를 직접 때린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낙하 충격과 바람만으로 자세가 무너졌다.
루프가 고도를 잃었다.
가람이 소리쳤다.
“날개 펴!”
루프가 가까스로 균형을 잡았다.
그 순간 아레스가 이미 방향을 바꾸고 있었다.
가람의 눈이 커졌다.
‘회복이 왜 이렇게 빨라?’
평소 공격 후 재가속 4초 이상.
그런데 지금은—
2초도 지나지 않았다.
종족스킬의 후속 효과.
가람이 데이터로는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경험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태건이 말했다.
“잡아.”
아레스가 루프에게 달려들었다.
“왼쪽!”
루프가 피했다.
하지만 늦었다.
그리핀의 발톱이 루프의 옆구리를 스쳤다.
흰 털이 날렸다.
HP 급감.
가람의 얼굴이 굳었다.
“이탈!”
루프가 상승하려 했다.
아레스가 위를 막았다.
아래.
그리핀의 몸.
옆.
경기장 경계.
가람은 빠르게 경로를 찾았다.
없다.
아니다.
있다.
그리핀의 오른쪽 뒤.
공격 후 시야가 짧게 비는—
“루프, 뒤로 돌아!”
루프가 몸을 틀었다.
아레스의 뒤쪽으로 빠졌다.
성공.
가람의 눈이 빛났다.
그런데 태건의 명령이 바로 이어졌다.
“꼬리.”
아레스가 몸을 돌렸다.
사자의 뒷다리가 루프의 가슴을 밀었다.
쿵!
루프가 지면으로 떨어졌다.
BEAST DOWN.
심판 시스템의 목소리.
루프가 일어나려 했다.
가람은 즉시 상태를 확인했다.
HP.
전투 지속 가능.
큰 부상 없음.
하지만 평가 경기의 안전 규정상 기준치 이하로 떨어졌다.
심판 판정.
Combat Incapacitation.
그리고—
MATCH END.
전광판에 결과가 나타났다.
WINNER
강태건
경기 시간.
6분 38초.
가람은 숫자를 멍하니 바라봤다.
10분까지 끌고 갈 생각이었다.
그때부터 Energy 차이를 만들 계획이었다.
하지만 태건은 10분을 주지 않았다.
가람이 상대의 후반을 읽는 동안—
태건은 전반에 끝냈다.
루프가 천천히 가람에게 걸어왔다.
가람은 옆구리를 확인했다.
피는 없었다.
피격 보호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했다.
실제 대회가 아니라 평가전이라 안전 제한도 강했다.
가람이 루프의 목을 쓰다듬었다.
“괜찮아?”
루프가 숨을 크게 내쉬었다.
“미안.”
루프가 이번에는 가람을 밀지 않았다.
가람은 더 미안해졌다.
반대편에서 태건이 아레스를 카드 상태로 전환했다.
그리고 걸어왔다.
“괜찮아?”
가람은 잠시 태건을 쳐다봤다.
생각보다 평범한 질문이었다.
“괜찮습니다.”
태건이 루프를 보았다.
“끝까지 잘 피하던데.”
가람은 말했다.
“결국 잡혔는데요.”
“잡으려고 한 거니까.”
태건은 그렇게 말하고 돌아서려 했다.
가람이 물었다.
“처음부터 6분 전후에 끝낼 생각이었습니까?”
태건이 멈췄다.
“아니.”
“그럼요?”
“네가 10분쯤부터 뭘 할 것 같아서.”
가람의 표정이 달라졌다.
태건이 말했다.
“영상 보니까 항상 그쯤부터 네 경기 되더라.”
“……”
“상대 움직임 좀 모으고.”
태건이 손가락으로 머리를 두드렸다.
“머릿속에서 정리 끝나면 그때부터는 잘하던데.”
가람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태건이 웃었다.
“그러니까 그 전에 끝내면 되잖아.”
간단했다.
너무 간단해서 반박할 말이 없었다.
태건이 몇 걸음 걸어가다 다시 말했다.
“근데.”
가람이 보았다.
“계속 도망치면 언젠가는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어?”
가람의 표정이 굳었다.
태건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돌아갔다.
평가실 위층.
차도현은 경기를 처음부터 다시 보고 있었다.
옆의 코치가 말했다.
“태건은 확실하네요.”
“응.”
“그리핀 컨트롤도 좋고, 종족스킬 타이밍도 정확합니다.”
차도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영상은 경기 4분 지점.
가람이 루프를 낮은 고도로 돌리며 아레스의 공격을 피하는 장면이었다.
코치가 말했다.
“윤가람은 역시 개인전에서는 어렵지 않을까요?”
차도현이 물었다.
“몇 분 예상했어?”
“네?”
“강태건 승리.”
코치가 잠시 생각했다.
“4분 정도요.”
“난 5분.”
실제.
6분 38초.
코치가 말했다.
“그래도 패배입니다.”
“알아.”
차도현은 경기 데이터를 넘겼다.
아레스 공격 시도 11회.
유효타 2회.
종족스킬 사용 전까지 유효타 0회.
태건의 그리핀이 저 정도로 따라붙고도 루프를 제대로 잡지 못했다.
그것 자체는 의미가 있었다.
차도현이 중얼거렸다.
“자기 살 길은 기가 막히게 잘 찾네.”
“하지만 공격을 안 합니다.”
“그러니까 혼자 쓰면 안 된다니까.”
코치는 차도현을 봤다.
차도현은 다른 명단을 열었다.
강태건.
그리고—
윤가람.
두 이름 옆에 표시를 남겼다.
PASS — ROUND 1
코치가 눈을 크게 떴다.
“가람도 통과입니까?”
“응.”
“졌는데요?”
차도현가 코치를 보았다.
“내가 아까 뭐라고 했지?”
코치가 입을 다물었다.
차도현이 웃었다.
“이겨야 붙는 시험 아니라고 했잖아.”
그의 화면에 새로운 이름 하나가 추가됐다.
서하린.
차도현은 세 이름을 한 그룹으로 묶었다.
윤가람.
강태건.
서하린.
그리고 저장 버튼을 눌렀다.
다음 평가.
TEAM MATCH.


